푸른초장

복음은 조선말을 입고 왔습니다(김재홍 목사)

정형철
2026-06-19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가 1885년 봄에 조선으로 향하던 중에 일본에서 뜻밖의 책 한 권을 보았습니다. 아직 조선 땅을 밟기도 전인데, 그 책은 이미 조선의 말로 쓰인 마가복음이었습니다. 번역자는 조선인 이수정이었습니다. 그는 일본에 머물며 복음을 받아들였고, 1885년 요코하마에서 《신약마가전복음서언해》를 펴냈습니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같은 해 4월 5일 제물포에 도착했을 때 복음은 낯선 외국어가 아니라 이미 조선말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의 교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좋은 소식은 누가 가져왔느냐만큼, 어떤 언어로 도착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진짜 변화는 좋은 것을 ‘가져오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상대의 언어를 입을 때 비로소 뿌리내립니다.

우리는 종종 옳은 말을 했다는 이유로 소통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은 말해진 순간이 아니라, 상대에게 닿는 순간 의미를 얻습니다. 상대의 언어로 말한다는 것은 유행어를 흉내 내거나 메시지를 희석하는 일이 아닙니다. 상대가 실제로 살아내는 세계를 존중하는 일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멀어진 이유 중 하나는 메시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번역이 부족해서일 수 있습니다. 좋은 말은 많았지만, 상대의 언어를 배우는 수고는 적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귀입니다. 복음이 조선의 언어를 입고 이 땅에 뿌리 내렸듯, 오늘의 교회도 이웃의 언어를 배울 때 다시 마음에 닿을 수 있습니다. 복음이 다시 오늘의 언어를 입고, 우리 곁의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좋은 소식으로 들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전 9:22)

김재홍 목사(202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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