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 연구팀이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주택가를 돌며 암 협회 모금을 요청하며 한 그룹은 그냥 "참여해 주십시오"라고 했고, 다른 그룹에는 "단돈 1페니라도 좋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가 참여율을 32%에서 58%로 끌어올렸고, 평균 기부액도 훨씬 많았습니다. 문턱을 낮췄더니 더 많이, 더 깊이 들어온 것입니다. 저는 이 실험 결과를 접하고 한참 다른 생각에 빠졌습니다. 신앙의 세계도 이런 문턱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믿고 싶지만,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합니다. 더 알아야 하고, 더 준비해야 하고, 더 괜찮은 사람이 돼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더'라는 부담이 문턱을 높입니다. 신앙인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기도하려다 멈추고, 봉사하려다 망설이고, 헌신하려다 물러섭니다. '제대로 못 할 바에야'라는 생각이 아예 시작조차 막아버립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예수님은 늘 문턱을 낮추며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동전 두 닢의 헌신, 물 한 그릇의 섬김처럼 완성된 것이 아니라, 작고 보잘것없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초청도 준비된 자가 아니라, 지쳐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는 것입니다. 치알디니의 실험이 보여준 역설은 의미심장합니다. 1페니라도 좋다고 했더니, 사람들은 오히려 더 많이 내놨습니다. 작은 시작이 더 깊은 참여로 이어졌습니다. 신앙도 작은 기도 한 줄이 기도의 사람을 만들고, 작은 순종 하나가 헌신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시작을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1페니짜리 시작도 받으시고, 거기서부터 일하십니다. 완벽하게 준비된 다음에 시작하겠다는 생각이 어쩌면 가장 신앙적으로 들리는 불신앙입니다.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마 17:20)
김재홍 목사(20260607)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 연구팀이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주택가를 돌며 암 협회 모금을 요청하며 한 그룹은 그냥 "참여해 주십시오"라고 했고, 다른 그룹에는 "단돈 1페니라도 좋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가 참여율을 32%에서 58%로 끌어올렸고, 평균 기부액도 훨씬 많았습니다. 문턱을 낮췄더니 더 많이, 더 깊이 들어온 것입니다. 저는 이 실험 결과를 접하고 한참 다른 생각에 빠졌습니다. 신앙의 세계도 이런 문턱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믿고 싶지만,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합니다. 더 알아야 하고, 더 준비해야 하고, 더 괜찮은 사람이 돼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더'라는 부담이 문턱을 높입니다. 신앙인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기도하려다 멈추고, 봉사하려다 망설이고, 헌신하려다 물러섭니다. '제대로 못 할 바에야'라는 생각이 아예 시작조차 막아버립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예수님은 늘 문턱을 낮추며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동전 두 닢의 헌신, 물 한 그릇의 섬김처럼 완성된 것이 아니라, 작고 보잘것없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초청도 준비된 자가 아니라, 지쳐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는 것입니다. 치알디니의 실험이 보여준 역설은 의미심장합니다. 1페니라도 좋다고 했더니, 사람들은 오히려 더 많이 내놨습니다. 작은 시작이 더 깊은 참여로 이어졌습니다. 신앙도 작은 기도 한 줄이 기도의 사람을 만들고, 작은 순종 하나가 헌신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시작을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1페니짜리 시작도 받으시고, 거기서부터 일하십니다. 완벽하게 준비된 다음에 시작하겠다는 생각이 어쩌면 가장 신앙적으로 들리는 불신앙입니다.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마 17:20)
김재홍 목사(2026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