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주일 저녁에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한자리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자리에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도마였습니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요 20:24)고 그의 부재를 증언합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왜 그는 그 자리에 없었을까요? 충성스럽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 11:16)고 외쳤던 도마가 정작 가장 필요한 순간에 홀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스승의 죽음이 너무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3년을 따랐던 분이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는 것을 목격한 후 모든 것이 무너져 함께 모이는 것조차 힘이 듭니다. 슬픔과 절망은 우리를 고립시켜 혼자 있게 만듭니다.
우리는 여기서 '상황 만들기'의 중요성을 발견합니다. 사람들은 힘들고 상처받으면 공동체로부터 멀어지고 싶어집니다. 교회를 나가는 것이 버겁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바로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혼자 있는 신앙은 점점 메말라갑니다. 의심은 고립 속에서 괴물처럼 자라납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책임이 있습니다. 첫째, 도마처럼 어렵더라도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는 용기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 만들기'입니다. 둘째, 제자들처럼 떠나간 사람을 다시 초대하는 사랑입니다.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그저 함께하자고 손을 내미는 공동체의 따뜻함과 격려입니다. 도마는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는 위대한 고백을 드렸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자리는 바로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5)
부활 주일 저녁에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한자리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자리에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도마였습니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요 20:24)고 그의 부재를 증언합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왜 그는 그 자리에 없었을까요? 충성스럽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 11:16)고 외쳤던 도마가 정작 가장 필요한 순간에 홀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스승의 죽음이 너무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3년을 따랐던 분이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는 것을 목격한 후 모든 것이 무너져 함께 모이는 것조차 힘이 듭니다. 슬픔과 절망은 우리를 고립시켜 혼자 있게 만듭니다.
우리는 여기서 '상황 만들기'의 중요성을 발견합니다. 사람들은 힘들고 상처받으면 공동체로부터 멀어지고 싶어집니다. 교회를 나가는 것이 버겁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바로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혼자 있는 신앙은 점점 메말라갑니다. 의심은 고립 속에서 괴물처럼 자라납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책임이 있습니다. 첫째, 도마처럼 어렵더라도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는 용기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 만들기'입니다. 둘째, 제자들처럼 떠나간 사람을 다시 초대하는 사랑입니다.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그저 함께하자고 손을 내미는 공동체의 따뜻함과 격려입니다. 도마는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는 위대한 고백을 드렸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자리는 바로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5)
김재홍 목사(202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