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가 부당한 지시를 할 때 거절하면 불이익받고, 따르면 양심에 걸립니다. 우리는 이럴 때 흔히 “융통성 있게 처신하라”는 조언을 듣습니다. 그런데 이 융통성이라는 말만큼 교묘하게 악용되는 단어도 드뭅니다. 때로는 지혜로운 대처를 의미하지만, 원칙 없는 타협을 포장하는 그럴듯한 명분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원칙보다 융통성을 더 높이 평가하고, “원칙만 고집하면 세상을 못 산다”는 말이 일상적 조언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원칙을 지키다 손해 보면 점점 더 융통성이라는 이름에 타협합니다. 하지만 이런 융통성이 쌓이면 결국 우리 안의 경계선이 무너집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지만 어느새 큰 것도 타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융통성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원칙이 없는 융통성입니다. 원칙이 없는 융통성은 그저 상황 논리일 뿐입니다. 반대로 융통성 없는 원칙은 경직된 율법주의로 사람을 힘들게 만듭니다. 진짜 지혜는 흔들리지 않는 원칙 위에서 상황에 맞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성경에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부하들은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고, 상황 논리로는 충분히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해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켰습니다. 그는 융통성 있게 상황을 해석하지 않고,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사울의 옷자락만 잘랐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융통성이 아니라 더 분명한 원칙입니다. 그 원칙이 분명히 서 있을 때 건강한 융통성도 가능합니다. 원칙은 우리를 지키는 울타리이고, 융통성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지혜입니다. 원칙 없는 융통성은 표류하는 배와 같지만, 융통성 없는 원칙은 항구에 묶인 배와 같습니다. 우리는 닻을 내린 채 항해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직장 상사가 부당한 지시를 할 때 거절하면 불이익받고, 따르면 양심에 걸립니다. 우리는 이럴 때 흔히 “융통성 있게 처신하라”는 조언을 듣습니다. 그런데 이 융통성이라는 말만큼 교묘하게 악용되는 단어도 드뭅니다. 때로는 지혜로운 대처를 의미하지만, 원칙 없는 타협을 포장하는 그럴듯한 명분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원칙보다 융통성을 더 높이 평가하고, “원칙만 고집하면 세상을 못 산다”는 말이 일상적 조언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원칙을 지키다 손해 보면 점점 더 융통성이라는 이름에 타협합니다. 하지만 이런 융통성이 쌓이면 결국 우리 안의 경계선이 무너집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지만 어느새 큰 것도 타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융통성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원칙이 없는 융통성입니다. 원칙이 없는 융통성은 그저 상황 논리일 뿐입니다. 반대로 융통성 없는 원칙은 경직된 율법주의로 사람을 힘들게 만듭니다. 진짜 지혜는 흔들리지 않는 원칙 위에서 상황에 맞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성경에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부하들은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고, 상황 논리로는 충분히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해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켰습니다. 그는 융통성 있게 상황을 해석하지 않고,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사울의 옷자락만 잘랐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융통성이 아니라 더 분명한 원칙입니다. 그 원칙이 분명히 서 있을 때 건강한 융통성도 가능합니다. 원칙은 우리를 지키는 울타리이고, 융통성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지혜입니다. 원칙 없는 융통성은 표류하는 배와 같지만, 융통성 없는 원칙은 항구에 묶인 배와 같습니다. 우리는 닻을 내린 채 항해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김재홍 목사(20251123)